본문 바로가기

► 제4회 개인전/관련기사

제4회 개인전 축사



뼈에 사무치는 차가움 없이 어찌 코를 찌르는 梅香을 얻으리!

 

경제를 비롯한 모든 분야가 날로 어려운 가운데 書藝界는 더욱 危機라고들 한다. 그러나 轉禍爲福이라는 말이 있듯이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얼마 전 국회에서 <서예진흥법>이 통과되었다. 많은 서예가들이 답보상태였던 서예문화가 이제 꽃피울 수 있을지 기대가 크다. 서예는 예술이기 이전에 인간의 마음을 표현하는 정신문화요. 그리고 예절과 인성교육을 위한 학문이다. 晩時之歎의 감이 없지 않지만 국가나 지자체의 후속조치가 시급하고, 아울러 서예인 모두의 渾然一體된 관심과 더욱 적극적 참여가 필요하겠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竹庵 呂星九는 꾸준히 작품전을 열며 한국서예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대다수 서예전이 서예작품위주이나 죽암은 서예와 篆刻작품, 그리고 印譜를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먼저 작품전을 진심으로 축하를 드리며, 아래와 같이 이번 전시작품을 살펴보기로 한다. 특히 서예의 과 전각의 선을 융합한 그의 작품에서 선의 특성과 리듬감, 또는 율동감을 살펴 그 미적 가치의 특징을 찾아보겠다.

 

사물의 형상을 본떠서 창안한 한자나 발음 기관의 형상을 본떠 만든 한글 등은 이들 자형의 조형성으로 말미암아 이미 숙명적으로 예술성을 포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문자가 으로 나타나 시각적이고 평면적인 조형예술이 되었음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선의 미는 사물의 형상을 선으로 단일화시켜 文字化하고, 그 선을 미적 표현 수단으로 발전시켜 서예가 되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과정에서 표현된 서예는 시대와 사람에 따라 각각의 특징이 나타난다.

그러니 한문서예가 비록 중국에서 傳來되었다 해도 우리 先人들에 의하여 쓰여 진 작품들은 우리 민족 나름대로의 개성 있는 예술의식의 표현인 것이다. 거기에는 우리민족만의 내적 정신세계의 본질이 발현되어 있고, 또한 민족적 자각과 반성의 토대에서 중국의 모방에서 벗어나려는 기풍이 있다. 이들을 좀 더 살펴보면, 서예의 선이나 章法에서 보이는 리듬은 인간 본연의 원시적 감정의 하나이기 때문에 이성적이라기보다 다분히 감성적 결과다. 그러므로 우리의 심리적 리듬현상인 , , , , , , 의 흐름은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들 상호간의 감정이입은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 연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으며 이 과정의 연속은 律動感을 일으킨다.

물론 선이 서예로 표현될 때 율동적 운동성을 나타내는 것은 사실이지만 역시 서예의 모든 선이 리듬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리듬의 가시적 표현의 기본 형식은 선이다. 서예에서 선은 물론 구성상의 律動感을 나타낼 수도 있으나 형태나 구성 이전에 운동감을 표현하는 리듬이 있다. 물론 이는 서예 특유의 재료인 붓에서 오는 특징이기도 하다. 즉 유연성을 지닌 서예용 붓은 서예가의 정신력이나 기교에 따라 筆力이란 선의 운동성이 나타나고 미적 감흥에 의한 리듬이 발생되기 때문이다.

 

죽암은 이러한 리듬감 또는 율동감을 천부적으로 타고났다. 그는 리듬 자체를 거의 완전하게 서예 작품에 이입시키고 있음이 보인다. 예를 들면 정규적인 楷書·木簡 筆意로 쓰여 진 <般若心經> 두 작품은 죽암 특유 線質活動性律動이 보인다. 물론 변화 없이 전통의 書法에만 빠져있다면 이는 古人奴書에 불과하다. 여기서 변화한다는 말은 規矩를 바꾸거나 의식적으로 없앤다는 말은 아니다. 고인들의 지극한 地境을 학습하여 妙用이 자신에게 내재된다면, 변하기를 기대하지 않아도 스스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죽암의 ·木簡 筆意隸書 5언 절구 <退溪先生詩>, <半山先生詩>, 老子<天道無親>, 老子<和光同塵>, 周易註句 <仁義禮智>, <三省>, 中庸<溫故知新>, 明心寶鑑立敎篇 구절인 <勤儉和順>, 詩經<對聯> 등은 붓을 운용함에 있어서 눕히거나 세우는 것이 있으며, 기우려지거나 굽은 것도 있고, 혹은 작거나 크게, 혹은 짧거나 길게 하는 자유스러운 용필이 보인다. 米芾세상 사람들이 큰 글씨를 쓸 때, 힘을 다해 붓을 잡으니 글씨가 근골과 신기가 없다. 또한 필두를 눕혀 붓을 거두니, 획이 떡을 쪄 놓은 것 같다(世人多寫大字時, 用力把筆, 字逾無筋骨神氣. 又倒收筆頭, 畫如蒸餠)라 하고 큰 글씨를 쓸 때는 작은 글씨를 쓰는 것과 같이하여 필봉의 형세가 온전히 갖추어져야 한다(如曰寫大字, 須如小字, 鋒勢備全)고 했다. 이를 죽암의 글씨에 대입해 보면, 기울어져 바르지 못한 용필과 長短의 선질 변화가 지나칠 만큼 많이 보인다. 그러나 이들 모두는 답답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조화의 오묘함으로 미불이 말한 온전한 필봉의 형세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죽·목간의 簡牘 필의에 전서가 함께 어울린 작품으로 莊子<觀水洗心>, 韓愈師說 구절인 <吾師道也>, 蘇東坡前赤壁賦句<無盡藏>, 道德經구절인 <上善若水> 등이 있다. 아울러 大學구절인 <明明德>은 전서와 老子帛書 甲·乙本필의의 혼용으로 보인다. 더욱 죽·목간의 필의에 大篆, 즉 갑골문자나 금문, 그리고 소전이 함께하는 명심보감구절인 <人皆愛珠玉 我愛子孫賢><子孝雙親樂 家和萬事成>, 자유분방한 행초서의 <王維詩><老峯先生詩> 등은 서로 이질적으로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여기서 또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죽암작품의 選文이다. 그는 노자, 논어, 주역, 시경, 중용, 대학, 맹자, 장자, 명심보감등 많은 전적을 읽고 참고하였다. 여기서 李匡師書訣에서 말한 구절이 생각나게 한다. “글자의 획은 마음에서 나오고, 意致는 학식의 도량에서 생긴다(字畫源於心術, 意致生於識量)”라 하고, 아울러 무릇 배우는 자는 재기와 학문, 근면과 독실이 겸비되어야 이룰 수가 있다. 재주를 믿는 것이 정미한 학문만 못하고 정미한 학문은 반드시 독실한 공부가 필요하다. 어찌 서예만 그러하겠는가, 만사가 이와 같다(凡學者, 須才學與勤篤, 相兼乃可成. 恃才不如精學, 精學必須篤功 豈徒筆藝, 萬事皆然)”고 했다. 이는 서예가가 갖추어야할 자세로 반드시 通明正直, 그리고 博學하여야 함을 강조한 말인데, 죽암이 서예를 대하는 자세와 너무나 일치한다.

또한 죽암의 한글로 쓰여 진 이은상의 시 <조국강산>명심보감계선편 구절, 채근담을 한글로 풀어 쓴 작품은 작품성과 함께 그의 성정을 말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하늘이 나에게 복을 박하게 준다면 나는 내 덕을 두터이 하여 이를 맞이할 것이며 하늘이 내 몸을 수고롭게 한다면 나는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 이를 보충할 것이며 하늘이 내 경우를 곤란하게 한다면 나는 내 도를 다하여 이를 통하게 할 것이니 하늘이라도 나를 어찌 할 수 있겠는가.” 위 구절에서 죽암의 올곧은 성품과 의지를 읽어낼 수 있겠다.

죽암의 이번 전시에는 菜根譚전문을 새긴 印譜 출판과 함께하고 있다. 50방의 전각작품으로 이루어진 <반야심경>은 그의 전각예술 모두를 보여준다. 아울러 전각의 印稿를 보는 듯한 작품으로 書經구절인 <滿招損謙受益>論語구절인 <有德者必有言有言者不必有德--> 등이 있다. 여기에 나타난 전서 특유의 字例와 오묘한 筆致, 그리고 구성은 그가 전서를 비롯한 능숙한 서법의 硏鑽이 없었다면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章法에 있어서도 印面 문자의 大小, 疏密의 균형, 輕重, 增損, 屈伸, 承應 등에 유의하여 교묘하지만 너무 섬세하지 않고, 소박하지만 너무 평범하지 않는 변화를 추구하면서 전체적으로는 조화를 이루고 있다.

 

끝으로 죽암의 작품 앞에서 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정신과 모양이 화목하여야 하며” “오직 神采만 보고 字形은 보지 않는다(惟觀神采, 不見字形)”張懷瓘의 말이 떠오른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작품전을 축하드리며, 오늘이 있기까지 사랑과 관심으로 뒷바라지 하신 가족을 비롯하여 여러 後輩, 그리고 동학의 愛情에 깊은 감사를 보낸다. 부디 오늘을 계기로 부족한 부분은 더욱 硏磨하고 精進하여 自得의 예술을 더 많이 보여주시길 간절히 희망한다. “뼈에 사무치는 차가움이 없이 어찌 코를 찌르는 매화향기를 얻을 수가 있겠는가?(不是一番寒徹骨 爭得梅花撲鼻香)” 향기로운 잔치에 이렇게 밖에 격려의 말을 전하지 못하는 제 무딘 표현을 이해 바란다.

 

                                                                                                                             2019315

                                                                             東方文化大學院大學校 昊雲館에서 總長 李永徹 두손모음

'► 제4회 개인전 > 관련기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뉴시스  (0) 2019.04.13
한국경제  (0) 2019.04.13
동아일보  (0) 2019.04.13
전각 채근담 인보 서문  (0) 2019.04.08
한겨레신문  (0) 2019.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