竹庵書展에 부쳐 ....
書法은 淸楚, 正確, 美觀을 얻어야한다. 그것은 매우 높은 審美價値(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을 分別하고 살펴서 얼마만큼 중요한가의 程度)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간단한 線의 造形으로 각종 思想, 情趣를 表現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아름답고 좋은 생활의 聯想을 일으키게 하여 아름다움을 享有케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書家는 自然界와 社會의 각종 現象과 기타 藝術樣式의 作品들을 觀察해서 美의 現象과 情趣를 보충하고 순수함을 얻는 가운데에서 자기의 書法과 融合하여 向上시킴으로서 成功에 到達 할 수 있는 것이다.
鍾繇는 “萬物을 자세히 보니 모든 象이 다 書이다.”라 하였고, 張旭은 孫大娘公의 劍舞를 보고 “하늘을 짊어지고 法을 다툰다.” 하여 法을 提高하였고, 韓愈는 “天地의 萬物이 변하는 중에 기뻐하고 놀란 모양 등을 書에다 빗대였다.” 라 하였다. 또한 懷素는 夏雲多奇峰을 夜聞江濤에서 靈感을 얻어 書法藝術을 啓發하였다는 등이다.
그러므로 繪畫, 彫塑, 音樂, 文學 등의 각 方面의 지식을 갖추고 일정한 수양을 쌓아야 書法水準을 提高하였는데 크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또한 書法美의 獨創性을 또 일정한 法度를 필수적으로 준수하여야만 하는데 이는 모든 사람들이 共認하는 規則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 가장 基本은 다음 두 가지 條件들이다.
첫째 線은 반드시 審美를 표준 하는 筆力을 준수하여야 한다. 예컨대 中鋒行筆로하는 ⌜圓感과 澀感⌟이 있어야 하고, 骨肉이 적당하게 알맞아야 한다. 만일 이러한 準則을 벗어나서 創新 한다면 그것은 상반되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예를 들어 徽宗(宋)과 伊秉綬를 같은 ⌜瘦⌟의 線에서 보면 徽宗의 ⌜瘦金書⌟는 骨은 있으나 肉이 없어서 書意를 잃었으니 線이 豊滿하고 내용이 충실하지 못하여 심지어는 病書라는 비웃음을 받았다. 美學價値로는 ⌜瘦勁獨絶⌟한 伊秉綬의 書만 못하다고 廣藝舟雙楫에서는 評하였다.
둘째 線사이의 按配관계는 곧 結字나 章法으로 文字의 結構는 반드시 基本規律을 준수해야지 원래의 文字의 結構를 임의로 뜯어 고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설령 草書역시 일정한 科學的인 근거가 있어야한다. 草書라고 해서 아무렇게나 빙빙 돌리는 것들이 허다하게 나타나는데 結構할 때 “네 개의 단추 구멍처럼 일률적으로 짜여 지는 것” 같이 진실 되지 않는 것을 創新이라고 취급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 두 가지는 千餘年 來에 形成된 傳統으로 書法藝術이 創新하면서 발전되어온 것이다. 따라서 獨創性과 規則性은 시종 相輔相成함을 알 수 있게 하는 내용들이다.
竹庵은 이번에 戰國文字인 楚簡을 西周의 靑銅器 銘文과 漢隸를 融會시켜 作品化 하였는바 그 線條가 諢厚하면서 剛勁하고 行筆은 沈着하면서 活氣가 넘치며 結體는 端正하여 심도 있게 窮究한 面이 役役하였다.
行書는 北魏書法에다 王右軍을 深究自得하였기 때문에 그 線條가 비교적 瘦勁하고 筆力이 豪放하고 行筆은 도약하고 경쾌하며 結字는 疏朗하고 勢는 左右로 경사지게 펼쳤다.
竹庵의 이번 展示作品중 白眉는 篆刻千字文을 족자 아홉 개로 연이어 담았는데 250句를 每句마다 한 作品씩 小品으로 章法이 다양하게 構成하여 감상자로 하여금 多採롭고 盛大하여 壯觀인 것이 그 어디에 비할 바 없이 아름다웠다.
앞으로 竹庵에게 바라는 바는 竹庵은 한국서단에 中堅作家이다. 모두가 竹庵을 바라보는 눈이 있다. 이런 점을 주시해야 한다.
끝으로 東坡는 “退筆이 塚을 이루고 墨汁이 옷을 이루도록 學習했다면 王羲之 보다는 못해도 王獻之에는 미칠만하고 千個의 붓과 萬個의 먹을 썼다면 張芝는 못해도 索靖만큼은 됐을 것이다.” 라고 했다. 응당 이렇게 身心을 수립해야 하며 숙련의 경지에 이르려면 筆法을 장악하여야 하고 揮毫가 自如할 때 자연히 苦盡甘來의 맛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다 같이 명심할 名言이다. 앞으로 더욱 精進 있기를 바라는 바이다.
2914년 4월 養素軒書法硏究院長 呂元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