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태(海陀) 두 마리가 연지(硯池)의 좌우에 서서 서로 마주보며 웃는 모습을 하고 있는 벼루이다. 인사동의 골동품 가게에서 몇해전에 구입 했는데, 벼루의 명을 해태쌍연(海陀雙硯)이라 이름 하였다. 해태(海陀)는 예로부터 동아시아에 전해져 내려오는 고대 전설 속의 “시비와 선악을 판단하여 안다고 하는 상상의 동물”로, 원래 해치(獬豸)가 원말이다. 사자와 비슷하나 기린처럼 머리에 뿔이 있다고 정의되어 있는 “해치”는 그 형태적 특징이 목에 방울을 달고 있으며, 몸 전체는 비늘로 덮여 있다고 알려져 있고, 겨드랑이에는 날개를 닮은 깃털이 나 있고, 여름에는 늪가에 살며 겨울에는 소나무 숲에 산다고 알려졌다.
벼루는 문방사우(文房四友) 가운데 하나이다. 먹을 가는 부분은 연당(硯堂), 연홍(硯泓)이라고 하고, 먹물이 모이는 오목한 곳은 묵지(墨池), 연지(硯池)라고 한다. 그 형태는 원형부터 4각형, 6각형, 8각형, 12각형 또는 물건의 형태를 본떠 만든 금연(琴硯), 풍자연(風字硯) 등 다양하며, 크기도 매우 다양하다. 재료로는 돌, 옥, 수정, 도(陶), 자(磁), 철, 금동, 은, 대나무, 조개껍질 등 다양한 재료가 사용되는데 대개는 돌을 많이 사용한다. 돌은 석질(石質)이 아름답고 연지의 물이 10일이 지나도 마르지 않는 것을 가장 좋은 것으로 친다. 인류가 벼루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은대(殷代)의 갑골(甲骨)에 붉은색과 검은색으로 쓴 글자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일찍이 어떠한 형태이든지 먹물을 만들 수 있는 도구가 사용되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현재 중국 상하이[上海] 박물관에 원시시대의 벼루로 추정되는 것이 소장되어 있으나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것은 후베이 성[湖北省] 육현(陸縣)에서 발견된 것으로 BC 167년경 제작된 것이다. 현재와 비슷한 형태의 벼루가 제작된 것은 한대부터이며, 동작대(銅雀臺)의 폐허에서 발견된 것과 낙랑고분에서 발견된 석연(石硯)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가야시대에 만들어진 도연(陶硯: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소장)인데, 원형의 연면에 연지가 돌려져 있고 5개의 다리가 있다. 중국에서는 당대(唐代)부터 단계(端溪)에서 나는 단계연이 유명하며, 우리나라에서는 남포연(藍浦硯)과 위원연(渭原硯)등이 있다.